【‘사춘기 딸’】《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딸의 편지>
아버지가 딸의 침실에 들어갔다가 침대 위에 놓인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고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남자 친구와 함께 달아난다는 사실을 이렇게 편지로 알려야 한다니 너무 너무 안타깝고 미안해.
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했거든. 나는 그에게 완전히 빠져버렸어. 특히 그 엄청난 피어싱과 문신! 또 그는 아주 커다란 오토바이를 몰고 다녀!
엄마 아빠, 그게 다가 아니야, 나 임신했어. 그 사람은 우리가 그의 자취방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거래. 그는 아이를 많이 낳았으면 좋겠다는데, 나도 그래.
그리고 알고 보니 대마초는 전혀 해로울게 없던 걸?
우리는 앞으로 친구들과 나눠 피울 수 있게 훨씬 더 많은 대마초를 재배하려고 해. 대신 친구들은 독한 술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제공해 주기로 했고.
그 사이에 과학자들이 빨리 치료제를 개발해서 그 사람이 에이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젊고 멋진데, 벌써 세상을 떠나기에는 아깝잖아?
참, 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
그 사람의 친구들이 어느 지하실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하거든. 출연료는 편당 10만 원씩 될 것 같아.
거기에 또 세 명 이상의 남자들과 함께 찍으면 따로 10만 원의 보너스까지 준대.
엄마, 걱정하지마.
나도 이제 열여섯 살이나 되었고, 내 몸 간수 정도는 할 줄 알아.
언젠가 때가 되면 엄마와 아빠한테 손주 보여드리러 찾아올게.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딸이.
P.S. 아빠, 속았지? 나 지금 옆집에서 텔레비젼 보고 있어.
아니 난 그냥..
세상에는 딸이 수학에서 낙제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엄마 아빠가 알아줬으면 해서...
부모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편지다.
부모는 사춘기 자녀가 항상 걱정스럽다.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부모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녀는 어리석거나, 생각이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아도 세상을 바꾸고 이끈 사람은 ‘나이 든 어른’이 아니라, ‘패기에 찬 젊은이’들이다.
실수 좀 하면 어떠랴.
그것은 자녀들의 특권이다.
많은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의도하지 않게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잘못된 방식의 애정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어른보다 세상의 목소리를 더 잘 듣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세상이 강요하는 틀에서 벗어나 그대로의 자기다움을 펼치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