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v. 못된 남자】《남자들의 치졸하고 비겁한 이별 방식》〔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나쁜 남자’들은 잔인하고 가혹한 말로 마음의 상처를 남기면서 이별을 통보한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어.”, “이젠 너한테 질렸어.”, “미안해. 이제 우리 그만 만나자.”
따귀를 자초하고도 남을 이런 못된 말을 하는 남자들은 오히려 ‘괜찮은 남자’에 속한다.
전 세계 수많은 남자들이 ‘한 마디 말도 없이 잠적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별을 결심한 대부분의 남자들이 뽕하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그래도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 연락매체가 발달한 시대에 사는 요즘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축복받았다.
20년 전만 해도 연락이 끊어진 남자를 기다리던 여자들은 남자친구가 갑자기 불치병으로 사망했다든지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연락을 못하는 줄 알았다.
요즘의 ‘잠수탄다’는 말처럼 남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는 말조차 당시에는 없었다.
여자들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마지막 예의마저 갖추지 않는 남자들의 태도에 몹시 상처받는다.
도대체 왜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별의 방식으로 ‘잠적’을 택하는 걸까?
남자들은 ‘대화’라는 것을 힘들어 한다.
‘정치’나 ‘군대생활’ 등 특정한 주제가 있거나 사무적인 대화가 아닌, ‘사람 사이의 관계나 감정’에 대한 대화에서는 질식할 것 같은 느낌까지 받는다.
어려서부터 나약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데 거부감을 느끼게끔 길러졌기 때문이다.
만약 남자가 먼저 이별을 고한다면 여자는 당연히 이유를 물을 것이고, 그 것은 곧 기나긴 대화로 이어질 것이다.
좋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진땀나는데, 하물며 상대에게 상처 주는 내용으로 말을 던지며 곱씹는 것은 어떻겠는가?
그건 남자들에게 광화문 한복판에서 ‘스트립쇼(strip show)’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에 비하면 그녀의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뜰 때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고, 공황상태에 빠진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일 따위에서 오는 ‘죄책감이나 마음의 고통’ 쯤은 오히려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것이 남자다.
“왜?”냐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추궁당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이별은 만나서 직접 말하는 것이 예의”라는 당연한 상식은 저 멀리 은하계의 일처럼 아득한 일처럼 느끼는 것이 바로 남자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비겁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남자들은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이쯤 연락 안 했으면, 그녀도 내 뜻을 알았겠지. 상처를 주지 않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을 수 있어.”
스스로 자기 암시를 걸면서, 자기 마음 편한 방향으로 생각한다.
무엇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그 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상대가 저절로 알기를 기대하는 남자들의 비열한 습관이 이별의 순간에도 드러나는 것이다.
“나쁜 남자”보다 더 치졸한 “못된 남자”들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일부러 못된 행동을 해서 여자의 입에서 먼저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여자가 먼저 이별을 언급하면, 그 이후의 대화에서 남자는 너무 편해진다.
‘네가 원한다면.’ 이 한마디면 끝난다.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남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행동 뒤에는 ‘이런 방법들이 여자에게 덜 상처를 준다’는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여자들의 면전에서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은 남자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못 말리는 병’을 앓고 있다.
여자 쪽에서 먼저 이별을 선언하게 되면, 책임을 모두 여자에게 돌아가고 그의 남자다움은 구원 받는 것이다.
사실 이별의 슬픔을 적절히 표현하고 건강하게 처리해야 함에도 이를 감추는 많은 남자들은 여자보다 훨씬 오랫 동안 이별의 후유증을 앓는다.
남자들은 감정의 격량에 정면으로 마주하는데 있어서 여자보다 훨씬 겁 많고 소심한 존재다.
남자들의 비겁한 이별방식이 사실은 그 누구도 말릴 재간이 없는 ‘남자다움’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연약함과 소심함’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여자들은 어처구니 없는 이별에 처한 자신의 황망함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