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법조인의 소심증】《내가 밤새 잠 못이루고 뒤척이는 이유》[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1. 6. 2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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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소심증】《내가 밤새 잠 못이루고 뒤척이는 이유[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프랑스 혁명 중에 변호사, 목사, 엔지니어가 사형을 언도 받았다.

사형받는 날이 되자 변호사가 먼저 단두대에 섰다.

그는 빳빳이 서서 자랑스럽게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눈을 가리겠는가, 가리지 않겠는가?” 사형집행자가 물었다.

변호사는 죽음을 맞아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곧추 세우고 대답했다. “가리지 않겠소.”

머리를 들겠는가, 숙이겠는가?” 사형집행자는 질문을 계속했다.

변호사는 여전히 꿋꿋했다. “들겠소.” 변호사는 비장하게 말했다.

 

사형집행자가 도끼를 휘둘렀다.

단두대 위에서 번쩍하는 도끼날이 밧줄을 탁 끊었다.

칼날이 한줄기 빛을 번쩍이며 내리꽂히더니 변호사의 목 바로 위에서 딱 멈췄다.

이런. 오늘 아침에도 틀림없이 살펴봤는데.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는데.”

사형집행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변호사는 이때다 싶어 사형집행자에게 재시도는 이중 처벌이라고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했다.

참수형 집행절차 설명서를 제대로 살펴보면, 거기 이런 구절이 있을거요. 참수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을 때 사형수는 면죄를 받아 풀려날 수 있다는.”

사형집행자가 설명서를 살펴보니, 변호사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변호사는 풀려났다.

 

다음 차례로 목사가 단두대로 끌려나왔다.

눈을 가리겠는가, 가리지 않겠는가?” 사형집행자가 물었다.

가리지 않겠소.” 목사도 변호사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머리를 들겠는가, 숙이겠는가?” 사형집행자가 물었다.

들겠소.” 목사가 똑바로 서서 당당한 어조로 답을 했다.

 

사형집행자가 도끼를 휘둘렀고, 밧줄을 탁 끊었다.

다시 한번 칼날이 목사의 목 바로 위에서 멈추었다.

이럴 수가! 연속으로 두 번이나.” 사형집행자가 소리를 질렀다.

목사는 신께서 자신을 살려주신 것이라고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했다.

규칙은 규칙이니까 따라야지. 변호사가 그랬듯 당신도 아직 살 날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 가시오.” 사형집행자는 목사를 석방했다.

 

엔지니어가 세 번째로 단두대에 올랐다.

사형집행자는 꼴이 우습게 되어서 이번에는 거듭 단두대를 점검하고 모든 게 제대로 작동되는지 살펴 보았다.

눈을 가릴 텐가, 가리지 않을 텐가?” 사형집행자가 물었다.

가리지 않겠소.” 엔지니어가 대답을 했다.

머리를 들겠는가, 숙이겠는가?” 사형집행자가 물었다.

들겠소.” 엔지니어가 대답을 했다.

 

세 번째로 사형집행자가 칼날을 붙들고 있는 밧줄을 자르려고 도끼를 번쩍들었다.

사형집행자가 도끼로 줄을 끊으려고 휘익 바람을 가르는 순간, 엔지니어가 소리쳤다.

잠깐! 뭐가 문제인지를 알겠소.”

 

망치를 든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바로 직업병이다.

 

내 친한 친구는 수학선생님이다.

그 친구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는 별 생각 없이 식당주인에게 말했다.

계산을 아주 잘 했어요. 이번에는 계산기 없이 직접 해 보세요.”

 

법조인은 어떨까?

그들은 사법연수원에서부터 매일 같이 비관주의와 부정적 사고를 훈련받는다.

조금 단순히 말해 그들은 잘 작성된 문장 하나하나에 대해 문제가 어디에 있을까?’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리하여 계약서의 단 한군데의 사소한 빈틈을 억지로 찾아내어 매우 영리한 논리를 구성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에 1214시간씩 일하게 되면 사람은 당연히 변한다.

퇴근해서도 뇌는 계속 그런 상태다.

다행히 집에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어서 별 뜻 없이 당신이 오니 좋아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기뻐하기는커녕 밤새 뒤척이면서 한 가지 생각에만 골똘한다.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뭐가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