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얼룩】《사랑일 적마다 등을 먼저 돌린 건 모두가 당신. 살아간다. 혼자서도 당당히. 마음에 실금 복잡하게 엉킨 줄도 모르고.》〔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내가 주저앉은 그 자리에
새끼고양이가 잠들어 있다는 거
물든다는 거
얼룩이라는 거
빨래엔 피존도 소용이 없다는 거
흐릿해도 살짝, 피라는 거
곧 죽어도
빨간 수성사인펜 뚜껑이 열려 있었다는 거
- 김민정의 시 “마치…처럼” -
위 ‘짧은’ 시에 어찌 이리 강한 메시지가 ‘농축’되어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어느 날 절망이 들이닥친다.
그가 떠난다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이다.
이유야 여럿일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애초의 만남에 무슨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듯이.
그녀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울음보가 터진다.
그 울음은 자라나 빛나는 눈을 뜨고
밤을 쏘아보는 고양이가 된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는 동안 깊이 물들어 있었음을 이제야 알아챈다.
그 사랑의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강력한 세제도 소용없다.
뚜껑 열린 수성 사인펜이라니!
게다가 붉은 색이라니.
그것은 옅어질 수는 있어도 영원히 ‘피의 얼룩’인 채로 남는다.
수성사인펜으로 쓰는 글자들처럼 쉽게 번져가는 사랑의 운명.
그 글자들 위로 무수한 눈물이 떨어져 글자들은 번져갈 것이지만,
사랑은 뚜껑을 닫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 죽음 이후에도 진행형으로 남는다.
그것은 한없이 하찮은 무엇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일 적마다 등을 먼저 돌린 건 모두가 당신.
그렇게 밀쳐졌다는 마음일 때 홀로 산책을 나간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걷는다.
해질녘 나무 울음소리를 피해 마음의 보금자리로 피신할 때,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딛은 그 힘으로 기운을 얻어 온다.
살아간다.
혼자서도 당당히.
마음에 실금 복잡하게 엉킨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