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노인과 뿔테 안경】《1초 전까지 멀쩡했던 내 인생이 재활용 쓰레기통 안의 우그러진 페트병 같아 보이는 날이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7. 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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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뿔테 안경】《1초 전까지 멀쩡했던 내 인생이 재활용 쓰레기통 안의 우그러진 페트병 같아 보이는 날이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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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안경을 쓴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대부분 안경을 쓰고 있다.
 
젊은이들이 안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시력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라식이나 라섹 등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거나 콘택트 렌즈를 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외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 즉 미용적 측면이 많이 작용한 듯하다.
이런 트렌드 때문인지 ‘안경을 쓴 사람’은 ‘나이든 사람’이란 등식이 성립한다.
 
난 아직도 안경을 쓴다.
‘다초점 렌즈’를 사용하다가 이제는 ‘돋보기 안경(근거리용)’은 물론 ‘중거리용 안경’도 있다.
수정체의 탄력성이 저하된 탓인지, 다초점 렌즈 하나만 쓰면 눈이 매우 피로해진다.
그래서 수시로 눈의 노출 환경이나 업무의 태양에 따라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 안경을 바꿔가며 눈의 피로를 줄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안경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돋보기 안경도 집에서 쓰는 것과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것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사무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할 때가 많은데, 매번 돋보기 안경을 들고 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거리용도 마찬가지이다.
사무실과 집, 또는 산책이나 여행시 따로 사용할 안경이 필요해진다.
 
그 동안 크롬하츠 금속테를 사용하다가 이번에 뿔테(마르쿠스 마리엔펠트)로 바꾸었다.
금속테와 달리, 뿔테의 특징은 젊어보이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어보이거나 둘 중 하나다.
근데 새로 맞춘 뿔테 안경의 안경집이 어릴 적 곰방대로 담배를 피던 꼬부랑 할아버지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가죽안경집과 모양이 같다.
노인네티가 풀풀 풍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중년과 노년을 구별하는 대표적 증상이 있다.
어느 순간 책이나 신문의 작은 활자가 보이지 않게 된다.
가까운 것은 물론이고, 먼 것도 흐릿해진다.
그 순간 인생의 정점을 지났다는 커다란 충격에 빠진다.
 
근거리 안경 없이 컴퓨터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눈이 너무 피로하다.
이제는 눈을 찡그리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나 같은 안경쟁이가 읽기 위해 안경을 수시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모습은 일상이다.
 
노화는 공평하게도 모두에게 찾아온다.
세속의 영화와 관계 없이 함께 늙는다는 것,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이들에게는 새삼스런 위안이다.
 
요즘에는 대화를 하다가 수시로 “그거 뭐더라?”, “그 사람 있잖아?”라고 팔을 휘젖으면서 기억을 해내지 못해 더듬거리는 설단 현상까지 심하게 앓고 있다.
‘탐 크루즈’나 ‘브레드 피트’ 같은 유명한 영화배우 이름은 고사하고, 친한 친구의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할 때가 있다.
 
느릿하게 흐르는 마음의 시간과는 달리 내 얼굴과 신체는 정직하게 늙어간다.
이젠 나도 돋보기안경을 걸쳐 쓴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머리 희끗한 노인이 따뜻한 햇볕이 드는 거실의 흔들의자에 앉아 돋보기 안경을 코끝에 걸쳐 쓰고 독서하는 영화장면은 이제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을 법한 장면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다.
 
1초 전까지 멀쩡했던 내 인생이 재활용 쓰레기통 안의 우그러진 페트병 같아 보인다.
‘노인과 바다’ 이야기 만큼이나 울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