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작은 결혼식】《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내 스스로의 결정으로 내 생명을 마무리하고 싶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9. 2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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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결혼식】《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내 스스로의 결정으로 내 생명을 마무리하고 싶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https://yklawyer.tistory.com/category/%EB%B3%80%ED%98%B8%EC%82%AC%20%EC%9C%A4%EA%B2%BD/%EC%88%98%ED%95%84

 

2주 전에 둘째 딸의 작은 결혼식을 치루었다.

지금 둘째 딸과 사위는 이탈리아를 신혼 여행 중이다.

 

딸 결혼소식을 대학동기들이나 고교동기들의 단톡방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

우리 회사의 직원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가까운 가족들현재 교류 중인 지인 몇 분만 별도로 연락했다.

6-7년전 큰 딸이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로 작은 결혼식을 했다.

 

몇 달 전 페친인 조용주 변호사님의 글 중 평소 내 생각과 같은 내용을 읽었다.

바로 존엄사부조 문화에 관한 것이다.

https://blog.naver.com/oklawyer/223507065502 (조용주 변호사님 블로그)

존엄사에 대한 글도 몇 개 쓰신 걸도 기억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관은 아직 정립되지 않아 논란이 많을 수 있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난 내가 치매에 걸리거나 사실상 거동을 못하는 상태가 되면, “Well Dying”을 원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내 스스로의 결정으로 내 생명을 마무리하고 싶다.

가족들에게도 내가 식물인간이 되거나 치매에 걸리는 등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할 상태가 되면, 반드시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내가 생각하는 작은 결혼식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젊은 층들이 결혼식 비용을 아끼기 위해 소규모로 치루는 결혼식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존엄사작은 결혼식이든 가치관이나 인생관은 사람마다 달라 어떤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처지와 상황은 다르며, 그에 따라 정치에 대한 생각이나 삶에 대한 생각에 다른 점이 많이 발생한다.

 

영화 위대한 갯츠비(The Great Gatsby)’를 보면 도입부분에 닉 캐러웨이의 독백이 나온다.

막 어른이 되어가는 즈음 한 친구를 유독 비난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항상 이 점을 명심해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어떤 일이든 자신에게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란 장담을 하지 마라."

그 후 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즉각 대처하지 않고 잠깐 유보하는 버릇이 생겼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염두에 두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을 확보하는 아주 중요하다.

 

둘째 딸에 결혼에 대한 마음을 담아 축사를 했다.

 

[신부아버지 축사]

 

저는 신부 OOO의 아버지입니다. 오늘 두 사람의 혼인을 축복해 주시기 위하여 바쁜 일도 뒤로 미루시고 자리를 함께 하여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결혼식 주례도 10여 차례 서보았지만, 막상 제 딸이 결혼을 하는 자리에 서고 보니 더 떨리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신혼집으로 이사짐을 옮긴 둘째 딸의 텅빈 방을 보면, 무언가 가슴이 구멍 뚫린 듯한 허전함이 몰려옵니다.

 

저는 딸만 둘입니다. 예전에 첫째 딸을 낳고, 다시 둘째 딸을 낳았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제 손을 잡으시며 이번에도 딸이라서 서운하니?”라고 물으셨습니다. 당연히 서운했습니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딸을 키우면서 서운할 때가 두 번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과 나중에 딸 시집을 보낼 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이 전부 옳았습니다.

딸 둘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아들 없는 것에 대해 서운한 적이 그 후로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둘째 아이를 시집보내는 허전함보다는 착하고 예의바른 사위를 얻은 기쁨이 더 큽니다.

든든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사위는 겸손하고 친절하며, 화목한 가풍이 있는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예의도 아주 바르고 대인관계도 원만하며, 항상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숙한 품성을 지닌 사위를 이토록 잘 키워주신 사돈 내외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딸과 사위를 보면, 그 모습이나 성격이 오누이처럼 닮았습니다. 저희 둘째 딸은 저희와 함께 있을 때는 그다지 애교있는 살가운 성격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위와 둘이 같이만 있으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 둘째가 사위 OOO을 만나면서 행동이나 성격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좋게 많이 변했습니다. 더 말이 많아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다 친절하고 더 배려심있게 행동하며, 또 행복해 보입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이 기분 좋고 즐겁습니다.

서로의 눈빛을 주고 받으며 마주보고 있을 때 웃음이 나오고 행복하다면, 누가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딸 OO이와 사위 OO에게서 이런 눈빛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딸과 사위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뿐입니다. 지금처럼 항상 서로 사랑하라는 말 한마디 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부부가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저절로 부모 공경을 하게 됩니다.

 

우리 두 딸이 고등학교 학생이었을 떼 제가 식사를 하면서 물었습니다. “나중에 시집가게 되면, 아빠와 남편 중 누가 더 소중하니?” 우리 아이들은 당연히 아빠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난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배우자이니까요. “난 나를 낳아준 부모님과는 헤어져도 사랑하는 당신과는 헤어질 수 없어요.”라는 마음가짐으로 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딸 OO이도 사랑하지만, 사위 OO이가 참 좋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맺어주는 결혼은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진실로 깊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결혼생활은 오래된 와인과 같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맛과 향을 냅니다.

황동규 시인의 시 중에 제가 좋아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 사소한 일일 것이나 / 언젠가 그대가 한없는 괴로움 속에 헤매일 때는 /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부부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란 평소에 별다른 존재감 없이 사소하게 느껴지다가도, 정말 힘든 시간에는 가장 큰 위안과 평온함을 줄 수 있는 커다란 존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은 OO이와 OO이가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원천이 될 것이고, 두 사람이 살아가는 존재 이유가 될 것입니다.

내 딸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마음 속에 그 사람이 가득 차 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그를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OO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랑이 그대를 부르거든/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그를 따르십시요.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안거든,/ 비록 그 날개 안에 숨은 칼이 그대를 상처 입힐지라도/ 그에게 온 몸을 내맡기십시오.

사랑이 그대에게 말할 때는,/ 비록 사나운 북풍이 정원을 폐허로 만들 듯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뒤흔들지라도,/ 그 말을 신뢰하십시요.

 

사랑은 영혼끼리 만나는 유일한 통로이고, 결혼을 신성하게 하는 것도 오로지 진실한 사랑뿐입니다.

 

OO이와 사위 OO이가 결혼생활의 참된 행복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으면 합니다. 물 한 컵을 놓고도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이 대지 위에서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것입니다.

 

OO이와 OO이의 영혼 속에 늘 소박한 감사의 기도가 그치지 않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고 청아한 음악의 선율 같은 사랑을 키워 나가기를 바라고, 또한 천상의 축복이 항상 두 사람의 가정에 머물기를 아버지로서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