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청구권경합>】《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이 경합하는 경우 법원은 원고가 행사하는 청구권에 관하여 다른 청구권과는 별개로 그 성립요건과 법률효과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는지 여부(적극)(대법원 2021. 6. 24. 선고 2016다210474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지역주택조합원 가입증서 매매를 중개한 중개업자에게 중개의뢰인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
【판시사항】
하나의 행위가 계약상 채무불이행의 요건을 충족함과 동시에 불법행위의 요건도 충족하는 경우 권리자는 경합하여 발생하는 손해배상청구권 중 어느 것이든 선택하여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 이때 법원은 원고가 행사하는 청구권에 관하여 다른 청구권과는 별개로 그 성립요건과 법률효과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는지 여부(적극)
【판결요지】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은 각각 요건과 효과를 달리하는 별개의 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하나의 행위가 계약상 채무불이행의 요건을 충족함과 동시에 불법행위의 요건도 충족하는 경우에는 두 개의 손해배상청구권이 경합하여 발생하고, 권리자는 위 두 개의 손해배상청구권 중 어느 것이든 선택하여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동일한 사실관계에서 발생한 손해의 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도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하는 배상청구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배상청구는 청구원인을 달리하는 별개의 소송물이므로, 법원은 원고가 행사하는 청구권에 관하여 다른 청구권과는 별개로 그 성립요건과 법률효과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계약 위반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이 성립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바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가. 사실관계
⑴ 원고는 빌라주택 구입을 위해 공인중개사인 피고에게 찾아갔는데, 피고는 원고에게 지역주택사업 조합원 가입증서의 매수를 적극 권유하면서도 이 사건 주택사업의 구체적 진행상황, 법령상 제한, 그로 인한 사업의 위험성, 장기간 지연 가능성, 무산 가능성 등을 제대로 확인하여 이를 원고에게 고지하지 아니하였다.
⑵ 원고는 위 가입증서 매수대금 명목으로 5천만 원을 교부하였으나, 이 사건 지역주택조합사업은 조합설립인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시행사의 부도로 중단되었다.
⑶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부동산중개인으로서의 주의의무위반을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예비적 청구)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는데, 원심은 위 청구를 인용하였다.
⑷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피고의 채무불이행이 있음을 원인으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이유불비 또는 이유모순의 잘못이 있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나. 쟁점 : [중개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이유로 중개업자에게 곧바로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소극)]
⑴ 위 판결의 쟁점은,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이 경합하는 경우 법원은 원고가 행사하는 청구권에 관하여 다른 청구권과는 별개로 그 성립요건과 법률효과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는지 여부(적극)이다.
⑵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은 각각 요건과 효과를 달리하는 별개의 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하나의 행위가 계약상 채무불이행의 요건을 충족함과 동시에 불법행위의 요건도 충족하는 경우에는 두 개의 손해배상청구권이 경합하여 발생하고, 권리자는 위 두 개의 손해배상청구권 중 어느 것이든 선택하여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1983. 3. 22. 선고 82다카153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다만, 동일한 사실관계에서 발생한 손해의 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도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하는 배상청구와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배상청구는 청구원인을 달리하는 별개의 소송물이므로(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5다9760, 9777 판결, 대법원 2011. 8. 25. 선고 2011다29703 판결 등 참조), 법원은 원고가 행사하는 청구권에 관하여 다른 청구권과는 별개로 그 성립요건과 법률효과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계약 위반으로 인한 채무불이행이 성립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바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⑶ 원고는 부동산중개업자인 피고가 가치가 없거나 불확실한 지역주택조합원 가입증서의 매입을 적극 권유하여 이를 매수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주택조합사업이 조합설립인가도 받지 못한 채 중단됨으로써 위 가입증서 매매대금 상당의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⑷ 피고에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구하는 취지의 원고의 예비적 청구를 인용하면서 부동산중개업자와 중개의뢰인과의 법률관계는 민법상의 위임관계와 같으므로 중개업자는 중개의뢰의 취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의뢰받은 중개업무를 처리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중개업자인 피고가 이를 위반하였음을 이유로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은 불법행위책임의 성립요건에 대하여 별도로 판단하지 않은 채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곧바로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이유불비 또는 이유모순의 잘못이 있다고 보아 파기환송한 사례이다.
3. 민법 제390조와 제750조의 관계 (= 청구권경합)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209-210 참조]
⑴ 하나의 행위가 채무불이행 요건과 불법행위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경우, 권리자는 두 개의 손해배상청구권 중 어느 것이든 선택하여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1983. 3. 22. 선고 82다카1533 전원합의체 판결 :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은 각각 요건과 효과를 달리하는 별개의 법률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하나의 행위가 계약상 채무불이행의 요건을 충족함과 동시에 불법행위의 요건도 충족하는 경우에는 두 개의 손해배상청구권이 경합하여 발생하고, 권리자는 위 두 개의 손해배상청구권 중 어느 것이든 선택하여 행사할 수 있다).
소송상 동시에 청구하면 선택적 병합 관계에 있다.
⑵ 다만 위 각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원인을 달리하는 별개의 소송물이므로 법원은 원고가 행사하는 청구권에 관하여 다른 청구권과는 별개로 그 성립요건과 법률효과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처분권주의).
대상판결(대법원 2021. 6. 24. 선고 2016다210474 판결)의 원심에서는 소송물인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으므로 처분권주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다.
단, 판결이유에서 채무불이행이 있음을 지적하고 곧바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한 데 이유불비, 이유모순의 잘못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되었다.
4. 대상판결의 원심판단 분석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980-983 참조]
가. 대상판결 원심의 판시 내용
⑴ “중개업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중개대상물의 권리관계 등을 조사ㆍ확인하여 중개의뢰인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⑵ “부동산중개인인 피고는 … 매수 여부를 결정하는 데 관건이 되는 중요사항을 제대로 확인ㆍ고지하지 않은 채 … 전망이 밝고 비교적 단기간 내에 사업이 진행될 것처럼 설명하면서 매수를 적극 권유하는 등으로 부동산중개인으로서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하였으므로 원고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나. 원심의 판시 내용 중 ⑴ 부분 (= 잘못된 판시 아님)
⑴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불법행위는 특정한 의무를 불이행한 ‘부작위’를 말하는 것이다.
불법행위책임의 요건사실인 ‘위법행위’가 부작위행위일 경우, 그 작위의무는 다양한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데 그 중에는 법률행위, 즉 ‘계약’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다8709 판결 : 민법 제760조 제3항은 교사자나 방조자는 공동행위자로 본다고 규정하여 교사자나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자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는데, 방조란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작위에 의한 경우뿐만 아니라 작위의무 있는 자가 그것을 방지하여야 할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부작위로 인하여 불법행위자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여기서 작위의무는 법적인 의무이어야 하므로 단순한 도덕상 또는 종교상 의무는 포함되지 않으나 작위의무가 법적인 의무인 한 그 근거가 성문법이건 불문법이건 상관이 없고 또 공법이건 사법이건 불문하므로, 법령, 법률행위, 선행행위로 인한 경우는 물론이고 기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법적인 작위의무는 있다).
⑵ 이 사건에서도 부동산중개인인 피고의 작위의무는 ‘중개계약’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위임계약과 유사한 중개계약의 성질상 피고에게 ‘고지의무’, ‘설명의무’가 있다는 부분은 잘못된 판시가 아니다.
다. 원심의 판시 내용 ⑵ 중 앞부분, 즉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아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는 부분 (= 잘못된 판시 아님)
⑴ 채무불이행이 있다고 하여 곧바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즉 피고가 중개인으로서 부담하는 계약상 설명의무,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하여 곧바로 그것이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⑵ 그런데 부동산 중개인이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이미 판례들에서 불법행위책임이 인정된 바가 있다.
대법원은 부동산중개업자와 중개의뢰인의 법률관계를 민법상의 위임관계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여 중개의뢰를 받은 중개업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의뢰받은 중개업무를 처리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 제29조 제1항에 의하여 신의와 성실로써 공정하게 중개 관련 업무를 수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같은 법 제25조 제1항이 중개의뢰를 받은 중개업자는 중개대상물의 권리관계 등을 확인하여 중개의뢰인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고 그 권리관계에는 중개대상물의 권리자에 관한 사항도 포함되므로, 중개업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와 신의성실로써 매도 등 처분을 하려는 자가 진정한 권리자인지 여부를 조사·확인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다(대법원 1993. 5. 11. 선고 92다55350 판결, 대법원 2011. 7. 14. 선고 2011다21563 판결 등).
이처럼 부동산 거래당사자가 중개업자에게 부동산거래의 중개를 위임한 경우, 중개업자는 위임취지에 따라 중개대상물의 권리관계를 조사·확인할 의무가 있고 그 주의의무를 위반할 경우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하게 되지만, 그로써 중개를 위임한 거래당사자 본인이 본래 부담하는 거래관계에 대한 조사·확인 책임이 중개업자에게 전적으로 귀속되고 거래당사자는 그 책임에서 벗어난다고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다69654 판결).
위 2012다69654 판결은 과실상계에 관한 판시를 주로 하였지만, 부동산 중개인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불법행위책임 자체가 인정된 사안이다.
라. 원심 판시에는 불법행위책임의 요건 중 ‘위법성’에 관한 설시 누락
대상판결 원심 판시에는 불법행위책임의 요건 중 ‘위법성’에 관한 설시가 부족했다.
⑴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의 요건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⑵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채무불이행책임에서 ‘고의, 과실’, 즉 귀책사유는 채무자의 항변사항에 해당한다.
채무불이행책임에서 ‘위법성’은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것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없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 판단은 실질적으로 위법성조각사유의 유무에 달려 있다(이 때문에 ‘위법성’은 채무불이행책임의 요건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음).
결론적으로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에는 ① 채무불이행, ② 손해, ③ 인과관계의 3가지 요건사실을 판시하면 충분하다.
대상판결 사안에서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한다면 아래와 같은 판시를 하면 된다.
“중개의뢰를 받은 중개업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중개대상물의 권리관계를 조사·확인하여 중개의뢰인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피고는 이러한 의무에 위반하여 중요사항을 제대로 확인·고지하지 않은 채 원고에게 매수를 적극 권유하는 등으로 설명의무를 위반하였으므로 그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⑶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할 때에는 ‘위법행위’와 ‘고의, 과실’에 대한 판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불법행위책임의 요건인 ‘위법행위’를 판단함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 ‘손해’에 관한 내용을 빼놓고서는 어떠한 행위가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예컨대, 어떠한 의무를 불이행함으로써 발생한 이행이익 상당의 손해는 채무불이행책임에서의 손해는 될 수 있지만, 곧바로 불법행위책임에서의 손해까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불법행위책임에서의 손해는 불법행위가 있기 전과 후의 재산상태를 비교하여 그 차액에 해당하는 것이지(차액설), 약속된 상태로 이행되지 못한 상태와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의무의 위반으로 인하여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점이 전제가 되어야 비로소 그 행위가 불법행위책임에 있어 타인의 재산상 손해를 야기하여 반사회성이 있는 ‘위법한 행위’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대상판결 사안에서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다면 아래와 같은 판시하면 된다.
“피고는 부동산 중개인으로서 중개대상물의 권리관계를 조사·확인하여 중개의뢰인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피고는 이를 게을리한 과실로 원고에게 중요사항을 제대로 확인·고지하지 않은 채 매수를 적극 권유하여 원고로 하여금 중개대상물을 매입하고 매입대금을 지급하게 하여 매입대금 상당의 손해를 입게 하였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매입대금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위 표현 중 “고지할 의무가 있다.”는 부분은 사실상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할 때의 ‘계약상 설명의무’와 동일한 내용이지만, 채무불이행책임과의 구별을 위해 일반적인 용어인 ‘고지의무’를 사용하였다.
“피고는 이를 게을리한 과실로”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고의(…하지 않은 채 …하여), 과실(…를 게을리한 과실로)은 요건사실에 해당하므로 원칙적으로 판시상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인정 과정 등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명시적으로 기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⑷ 위법성 판단 누락
대상판결 원심 판시 ⑵부분은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할 때의 위 내용과는 달리 ‘매입대금 상당의 손해를 입게 하였으므로’ 부분이 빠져 마치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할 때와 비슷한 형태로 되어 있는바, 엄밀히 본다면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왜 ‘위법행위’가 되는지에 관한 설시가 누락되었거나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