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나 인생이 신비로운 이유】《여행이나 삶에서 우리는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원래 얻으려던 것보다 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 견문록’으로 남겼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길가메시 서사시’ 주인공 길가메시는 죽지 않는 비법를 찾아 헤맨다.
그는 험난한 시련을 겪으면서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결말이다.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은 원래 찾으려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얻는다.
길가메시는 ‘불사의 비법’ 대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른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Odysseus)가 귀향길에 겪은 모험을 노래하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귀환한다는 애초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 긴 여정을 통해 그가 진짜 얻게 된 것은 신으로 표상되는 세계는 인간의 안위 따위에는 무심하다는 것, 제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한갓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의 삶은 매우 연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것, 환각과 미망을 얻은 쾌락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디세우스는 처음 길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고향인 이타카에 도착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 고난과 시련, 좌절,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고, 또 그런 마법적인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것이야 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이나 ‘우연히 찾아온 행운(세렌디피티, serendipity)’는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여행이나 삶에서 우리는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원래 얻으려던 것보다 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모두 자기 인생을 살아냈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을지언정 평생을 들여 이룬 작은 성취가 있다.
여행이나 인생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는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콘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니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라이스트리콘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페니키아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거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 콘스탄티노스 카바피(C. P. Cavafy)의 '이타카(Ithak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