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두 분 PT선생님과의 저녁식사】《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7. 2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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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PT선생님과의 저녁식사】《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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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PT선생님과 전 PT선생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전 PT선생님에게서는 2019년 봄부터 3년간, 현 PT선생님에게서는 재작년부터 2년간 PT 수업을 받았다.
전 PT선생님은 나를 운동의 세계로 입문시켜 분이고, 현 PT선생님은 나이 든 나에게 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처음 PT를 받을 때부터 PT선생님과는 정기적으로 저녁식사를 함께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두 분을 함께 모셨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젊지만, 헬쓰(근력운동)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배울 것이 엄청 많은 탁월한 전문가들이다.
평생 운동과 먼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제 근력운동은 나에게 있어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었다.
내가 건강하고 싶다면, 그리고 꾸준히 운동에 관심을 갖고자 한다면, 이런 젊고 능력 있는 헬쓰전문가들과 어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가 ‘노년의 삶’이나 ‘운동’에 대해 유달리 유난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나이 또래 중에는 정기적으로 꾸준히 근력운동을 하는 분이나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시간과 비용, 노력을 들이는 분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든 사람의 ‘디폴트값(default value, 초기값, 기본설정값)’은 ‘불행’이다.
나이가 드는 것 자체가 불행의 늪으로 빠져드는 과정인 것이다.
노후에 행복해지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불행에서 빠져나오려는 실천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년은 병든 몸과 육체적 고통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노년은 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이 들어 쇠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건 먼 미래의 “나중에”였다.
 
그러나 앞으로 올 날의 어느 때로 한껏 유예해 둔 늙음의 시간은 그리 멀리 있는 추상적인 미래가 아니었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새겨진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글귀처럼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와 있었다.
 
‘젊다’는 형용사이고, ‘늙다’는 동사다.
‘젊어간다’는 말은 없어도 ‘늙어간다’는 말이 존재한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늙음은 진행형이다.
 
나름 건강하다고 자부하지만, 역시 젊은이와는 비교할 것이 아니다.
노년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건강을 위해서는 근력운동이 필수적이다.
 
노화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주관적인 감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몸이 먼저 그 순간을 알아차린다.
 
내 나이에도 불구하고 난 35세인 기분이다.
내 마음과 정신은 혈기왕성한 젊은이 같은 수준이다.
하지만 몸은…
그런건 잊어버리자.
 
무언가에 몰입을 하면서 열심히 일할 때는 내가 아직 젊은 청춘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이미 지는 태양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하루 동안 일어나는 마음의 변덕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간다.
 
젊을 때는 철이 없지만, 늙어서는 힘이 없다.
구글포토가 겨우 4-5년 전의 오늘 이맘때 여행사진을 보여준다.
벌써 얼굴모습에 차이가 난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꼰대들의 편리한 기억법과 일치한다.
아는 건 우물 하나 크기면서 시도 때도 없이
그 큰 입을 들썩이며 떠든다.
하지만 그가 떠드는 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맨날 그 소리다.
어제도 개굴개굴.
오늘도 개굴개굴.
 
나쓰메 쇼세키가 한 말이 생각난다.
 
홍시여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늙은이들이 “라떼는 말이야”라면서 너무 유난 떨지 말라는 뜻이다.
 
요즘은 인생의 어떤 시점보다도 더 열심히 근력운동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거나, 젊은이의 체력을 갖을 수는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발악을 한다.
 
젊음이 그들의 노력에 의해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
몸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게 여기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반백년을 쓰며 여기까지 오게 한, 마모된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호기심을 유지하며, 곱게 늙고 싶다.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삶의 고통과 역경,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도 웃어 넘기는 여유와 포용력을 가진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