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음식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좋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삶에는 여러 가지 기쁨이 있지만, 그 중 최고봉은 역시 먹는 즐거움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를 보면, 여자주인공은 자연이 선물한 우리 주변의 신선한 재료를 이용하여 정성껏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영화 속 만든 음식을 눈으로 보면서 즐기고, “아삭아삭” “후루룩” 먹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 허기진 마음을 달래 준다.
내가 위 여주인공처럼 멋진 요리를 할 능력이 없다는 딜레마가 있다.
저녁에 한 팀만 받는 프라이빗 다이닝(Private Dining)을 찾았다.
오∼오, 아∼, 으∼음!
음식이 사람을 이토록 행복하게 만든다.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의 기분이 이럴 것이다.
근데 고백하게 있다.
의도와 다르게 난 오해받고 있다.
내가 일부러 속이려한 것은 아니나, 어느 날 진실이 밝혀지면 난 두 손을 철사줄로 꽁꽁 묻힌 채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넘어 끌려갈까봐 잠을 설친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내가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항상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시련과 고통이 찾아오고,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나도 가끔은 안 풀리는 일이 있고, 이런 급변하는 시대에 어떤 적응을 통해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잠 못 이룰 때도 많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영화 터널(Tunnel, 2016)”의 한 장면을 생각한다.
무너진 터널 속에 한 남자가 갇혀 있다.
여전히 붕괴의 위험이 감지되는 아슬아슬한 상황, 추위와 배고픔과 함께 점점 짙어지는 어둠, 이 모든 것들이 두렵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제 구조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반드시 살아나가겠다는 의지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런데 이 남자가 뜻밖의 모습을 보여준다.
눈금까지 그어 조금씩 아껴 먹던 물을 마치 와인 마시듯 우물우물 음미하며 마시고, 꿈적하기도 힘든 찌그러진 차 안에서도 최대한 편히 누울 공간을 찾아 자신을 옷을 야무지게 덮고 잔다.
유일하게 잡히는 주파수의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경청하고 진행자의 멘트에 혼자 답한다.
라디오 진행자 : (광고가 시작되기 전 멘트) “딴데 가지 마세요.”
하정우 : “딴데 어디 갈 데도 없다, 치.”
주인공의 멋진 이 말에 난 눈물이 찔끔 나왔다.
터널 속에 갇힌 하정우의 모습은 만성 경기침체, 고용 불안 등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과 정말 똑같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절박하고 고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찾아내 즐긴다.
돌멩이가 항아리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고, 항아리가 돌멩이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다.
삶이 바로 항아리다.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통은 해가 뜨고 지는 것 만큼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통과 시련 만큼이나 행복도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힘들고 고통스런 처지에서도 지금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다 보면 기회가 오고 길이 보인다.
영어의 ‘savoring’이란 말은 현재 순간을 포착해서 마음껏 즐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난 라면 한 개, 콩국수 하나를 말아 먹더라도 고급 도자기 그릇에 예쁘게 담아 먹는다.
깨끗하고 깔끔한 상태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보기 좋게 차려 먹는다.
‘한 끼 대충 때우자’는 식으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한 끼 식사를 아무렇게나 홀대하지 않고, 그 음식 속에 들어간 재료의 맛을 하나하나 천천히 음미한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의 여기까지 온 당신이 얼마나 대견한가.
음식 한 가지를 먹더라도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자존감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