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집시, 앙리 루소】《지금도 뭔가에 지쳐 삶에 울림이 있는 공백을 만들고 싶을 때면 미술관으로 향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해외여행을 가면, 반드시 그 도시에 있는 특정 장소를 찾는다.
바로 미술관이다.
지금도 뭔가에 지쳐 삶에 울림이 있는 공백을 만들고 싶을 때면 미술관으로 향한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Trafalga Square)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에서 고흐를 만났을 때, 파리의 오랑주리(Orangerie) 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과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의 작품을 접했을 때, 프랑스 남부의 샤갈(Chagalle) 미술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명작들을 보았을 때 난 무언가 훅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경험을 했다.
숨 막히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저마다 다른 색깔로 말을 걸어오며 내 마음의 아픔, 고통, 슬픔을 위로해 주었다.
괜히 눈물이 났고, 지쳐있던 마음은 충만함으로 가득찼다.
이게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란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때 본 그림 중 하나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잠자는 집시(The Sleeping Gypsy)’다.
파랗고 신비로운 느낌의 그림 하나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이처럼 평화롭고 신비하고 천진난만한 그림이 또 있을까?
이 지구 어디에 저런 곳이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 이상한 공간에서, 사막에는 살지 않은 이상한 사자 한 마리가 집시 소녀의 잠든 머리 위를, 코를 킁킁대며 탐색하는 이상한 그림이다.
분명 사막 같은데 호수와 잇닿은 물가, 멀리 호수 너머로 흰빛을 뒤집어 쓴 산들, 달이 높이 뜬 한밤중인데도 어둡지 않고 푸르기만 한 하늘, 엉뚱한 사자의 출몰과 만돌린 하나를 달랑 들고 태평하게 누워 있는 소녀의 모습 등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이상하고 어처구니 없는 그림이 왜 우리에게 위안과 평온을 선사하는 것일까?
원초적인 에너지와 영혼과 교감하려는 직관력이 작품에서 느껴진다.
사자는 소녀를 해치려하기 보다는 교감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피곤해서 잠에 빠진 소녀는 밤의 생명력인 달빛이 낫게 해줄 것이다.
야생 밀림의 위대한 수호자인 사자는 소리 없이 다가와 소녀를 보호하며 자연의 은총을 내려주고 있다.
자궁처럼 생겨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악기인 만돌린은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창조적인 울림을 세상에 선사할 것이다.
악기 옆의 호리병은 지혜의 샘을 담아두는 곳으로, 밤새도록 촉촉한 이슬이 내려 그 안에 싱그러운 물을 가득 채워줄 것이다.
아침이 되면 소녀는 만돌린과 호리병을 옆에 끼고 인생이란 여로를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다.
하루 종일 걷느라 피곤에 지친 소녀야,
오늘은 실컷 자두렴.
내일 아침에는 밤새 일어난 신비로운 기적들을 기쁘게 맞았으면 좋겠구나.
이 그림을 보면서 어느 아련하고 애틋한 하루의 기분을 빚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