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플라시보(placebo) 중독이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한국의 나이든 남자들은 온갖 종류의 약병과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건강보조제를 숭배하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3. 6. 10. 22:25
728x90

【플라시보(placebo) 중독이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한국의 나이든 남자들은 온갖 종류의 약병과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건강보조제를 숭배하며 우울증, 비만, 발기부전, 소화불량과 같은 ‘사악한 기운’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https://yklawyer.tistory.com/category/%EB%B3%80%ED%98%B8%EC%82%AC%20%EC%9C%A4%EA%B2%BD/%EC%88%98%ED%95%84
 
아침부터 일어나 각종 약을 꺼내니 한움큼이다.
한국의 나이 든 남자들은 온갖 종류의 약병과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건강보조제를 숭배하며 우울증, 비만, 발기부전, 소화불량과 같은 ‘사악한 기운’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평균적으로 한국 중년 남자가 건강보조제를 복용하는 횟수는 사랑을 나누는 횟수보다 5배가 많다고 한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한 움큼의 알약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은 ‘생활의 달인’ 수준이 되었다.
충분한 양의 물을 들이마셔도 나중에 푹 젖은 상태의 알약 몇 개가 여전히 입안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젠 ‘물 없이 알약 삼키기’에 도전하려 한다.
미국 영화를 보면, 악당과 결투를 마친 주인공이 상처에 대한 진통제 알약을 물 없이 입에다 털어 놓고 꿀꺽 삼켜버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미쿡 사람들은 통상 그렇게 알약을 삼키나 보다.
 
그 많은 건강보조제를 한움큼 먹으면, 정말 건강해질까?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있었던 일이다.
한 간호사가 부상당한 병사를 돌보고 있었는데, 병사는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간호사에게는 당시 가장 강력한 진통제로 사용되던 몰핀(morphine)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간호사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차마 병사에게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커다란 주사기에 식염수를 넣어 고통받고 있는 환자에게 투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주 강력한 주사약이니까 곧 좋아질 거예요.”
그리고 실제로 병사의 상태는 훨씬 좋아졌다.
 
간호사가 동정심에 거짓으로 행한 조치가 기적과도 같은 효과를 낸 것인데, 바로 플라시보(placebo) 효과다.
그렇다면 이때 무엇이 작용한 걸까? 망상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아무 성분이 들어있지 않는 약, 즉 가짜약을 가리키는 플라시보(placebo)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로 ‘마음에 든다’라는 뜻을 지녔다.
간호사가 주사한 ‘몰핀’이 자신에게 효과를 나타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가 병사의 고통을 덜어 준게 분명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건 단지 플러스보 효과일 뿐이야.”라면서 이를 ‘망상’이라고 단정한다.
 
20세기 말에 들어 연구는 눈부신 진척을 이루었다.
이제 우리는 환자가 플라시보 복용후 통증 완화를 망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기대를 하면, 실제로 우리 뇌에서 내인성 진통제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려졌다.
바로 그 유명한 ‘엔돌핀(endorphin)’이 그것이다.
엔돌핀은 진짜 진통제와 똑같은 수용체에 작용한다.
즉 플라시보 알약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아도, 머릿속에서는 엔돌핀을 분비하며 신체는 완전히 실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런 효과는 의학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긍정적 기대는 일상을 여러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공감 능력을 지닌 어머니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기 아이 무릎에 ‘호’하고 입김을 불어 문질러 주고는 나쁜 ‘아야’를 쫓아버리거나, 아이에게 당근 조각을 건네주며 이걸 먹으면 뽀빠이처럼 금방 힘이 세질 거라고 암시를 준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게 아이에게 통한다면 어른에게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그다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 뇌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아무 성분도 들어있지 않은 플라시보 알약 4개는 2개보다 강한 효과를 낸다.’
‘플라시보 주사는 플라시보 알약보다 더 잘 듣는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플라시보 수술이다.’
‘값 비싼 플라시보는 값싼 플라시보보다 효과가 좋다.’
‘흰색 가운을 입은 특진 의사가 건네는 플라시보는 간호사가 건네주는 플라시보보다 효과가 좋다.’
‘파란색 플라시보는 진정효과가 있고, 빨간색은 흥분효과가 있다.’
 
예전의 사람들은 언어와 내적 이미지의 힘을 굳게 믿었다.
사실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던 별로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몇 가지 알려진 약초 말고는 의사들이 쓸 수 있는 변변한 수단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불경이나 성서의 한 구절을 종이쪽지에 적어 환자에게 먹이는 풍습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있었다.
쪽지를 씹어서 삼키면 몸에 좋은 말씀이 말 그대로 ‘체화’된다고 믿었다.
구구절절 씹을수록 맛이 난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 고시공부하던 사람들은 자신이 달달 암기한 법전을 찢어 씹어 먹었던 추억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맛없는 건강보조식품을 멍하니 응시하며 몸에 좋은 것이니 입 속에 꾸역꾸역 넣어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저렇게 많은 알약들을!’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젊은 것’에 속한다.
 
건강해지고 싶어 발악을 하는 나이가 되면서, ‘긍정적 기대의 힘’을 믿는다.
나는 플라시보 중독이다.
그만 끊어야 할 테지만, 무슨 차이가 있나?